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에몽 1세 (문단 편집) === [[안티오키아 공국]]을 차지하다 === 안티오키아 공략전에서 보에몽은 안티오키아의 정복자라는 영광을 탐내며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레몽과 대립했다. 보에몽은 레몽의 단기전에 반대하고, 안티오키아 내부에 첩자를 심은 뒤, 공성전을 시도했다. 허나 식량 사정이 악화되자, 십자군은 약탈을 위해 군세가 자주 분산됐고, 안티오키아 방위군의 습격을 받아 자주 피해를 입게 된다. 이와중에 보에몽은 다른 십자군 영주들이 그를 암살하려고 한다는 거짓 밀고를 흘려 동로마 제국 황제의 대리인이었던 [[타티키오스]]를 제국으로 돌려보냈고, 보에몽은 다른 십자군 지휘관들에게 자신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돌아갈 것이라고 협박하여 강제로 협조를 얻어낸다. 보에몽은 안티오키아를 구원하려는 튀르크의 증원군을 격파하고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냈으며, 안티오키아 내부의 피루즈를 매수한다.[* 피루즈가 어째서 보에몽의 매수에 넘어갔느냐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는데, 그의 아내가 튀르크인 상관과 불륜 관계라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대야성--이슬람 교도들에게 치를 떨던 나머지 도시를 넘겨준 것이란 설도 있다. 또 다른 설로는 그가 곡물을 횡령한 것이 들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도 한다.] 피루즈는 보에몽에게 자신의 아들을 인질로 맡기고 도시를 내어줄 것을 약속했다. 보에몽은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강조한 다음에 만약 자신이 안티오키아를 단독으로 점령하면 자신에게 지배권을 양도할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십자군 지휘관들이 이에 동의했지만 레몽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곳은 제국에 반환하겠노라 맹세한 서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보에몽은 동로마 제국의 알렉시우스 황제가 십자군을 돕겠노라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으니 자신들 역시 서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며 다른 지휘관들을 설득했다. 이는 앞으로 획득한 땅들도 동로마 제국에 돌려주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대외적인 명분이 되므로 결국 다른 지휘관들도 동의했다. 1098년 6월 3일 아침, 십자군은 짐짓 카르부카를 상대하러 떠나는 것처럼 동쪽으로 떠났고 안티오키아인들은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그날 밤, 십자군들은 피루즈가 몰래 연 문을 통해 즉시 안티오키아를 향해 들이쳤다. 보에몽의 병사들이 안티오키아 내부로 진입했고, 내부의 요새를 제외한 도시의 대부분이 단 몇 시간 만에 함락됐다. 안티오키아를 점령한 십자군은 튀르크인들을 보는 족족 모조리 척살했고 이에 휘말린 아르메니아인들과 정교도들도 많이 죽었다. 십자군은 실로 엄청난 전리품을 얻어 보급품 부족 현상을 해결했으며, 안티오키아의 성주였던 야기 시얀은 달아나던 도중,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잡혀 죽었고 이내 그들은 성주의 목을 베어 십자군에게 바쳤다. 이후 보에몽은 스스로를 안티오키아 공작이라 선포한 뒤 점거하고는 더이상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진격을 거부했다. 그는 다음 해 예루살렘이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후에야,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이 십자군 서약을 준수(...)했노라 선언했고, 이어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십자군 왕국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